2019년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지 100년이 되는 해로, 임시정부수립, 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 입니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에 살았던, 독립을 누구보다 바라던 5명의 대표 시인을 만나고자 합니다.
이 시인들은 시를 통해서 일제 통치에 저항하고, 후대에게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언어를 남겨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이 시인들의 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꼭 읽어야 하고, 특히 학생들이라면 꼭 익혀야 할 시입니다.
우리는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시인들이 남긴 시를 통해 원통해 하고, 독립을 열망하는 그들의 모습을 만나, 그들을 한번 더 기억하고 감사해 하는 시간을 가져 보기 바랍니다.
또한, 본문은 시의 의미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읽기 편하도록 맞춤법에 맞게 최소한으로 수정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홍사용 [ 洪思容 ] (1900년 ~ 1947년)
호는 노작(露雀)으로 절망과 비애를 표현한 산문조의 시와 민요조의 시를 발표했다.
그는 학생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체포 후 풀려나고, 수필 ‘청산백운’과 시 ‘프른 언덕 가으로’를 써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수필, 시, 소설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남긴 그는 자신이 쓴 희곡 작품에 직접 출연하는 등 연극 활동에도 전념하다가 8·15광복을 맞아 근국청년단(槿國靑年團)운동에 가담하였으나, 지병인 폐환으로 사망하였다.
- 정지용 [ 鄭芝溶 ] (1902년 ~ 1950년)
순수 서정시 및 종교적인 시를 많이 썼던 시인으로 참신한 이미지와 절제된 시어로 한국 현대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한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는 대학에 다니던 1926년 유학생 잡지에 카페 프란스 등의 시를 실으면서 등단하였다.
1930년에는 박용철, 김영랑, 이하윤 등과 함께 동인지 ‘시문학’을 발간하고, 1933년에는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김기림·이효석·이종명·김유영·유치진·조용만·이태준·이무영 등과 함께 9인회를 결성하였다. 또한 그해에 창간된 ‘가톨릭청년’의 편집고문을 맡아 다수의 시와 산문을 발표하였으며, 시인 이상의 시를 소개하여 그를 문단에 등단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북한군에 의해 납북되었다가 사망하여서 오랜 기간 동안 다른 납북 문인들처럼 공개적으로 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금지되었다가 1988년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 심훈 [ 沈熏 ] (1901년 ~ 1936년)
본명은 심대섭(沈大燮). 호는 해풍(海風)으로, 강한 민족의식과 계급적 저항의식 및 휴머니즘이 담긴 작품을 발표했다.
그는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여 투옥, 퇴학하고 난 후 연극, 영화, 소설 집필등에 몰두 하였다.
- 변영로 [ 卞榮魯 ] (1897년 ~ 1961년)
가락이 부드럽고 말씨가 정서적인 시를 썼던 그는 시를 통해 민족혼을 일깨우고자 했던 시인이었다.
그는 민족 시인으로 선비적 절개와 지조를 고수하고,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는 시를 남겼으며, 미국에서 공부했던 것을 기반으로 시를 쓰는 것 외에 영미문학을 소개하고, 우리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는 등의 작업도 진행했다.
- 김영랑 [ 金永郎 ] (1903년 ~ 1950년)
본명은 김윤식(金允植)으로 한국적인 순수 시의 대표적인 시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휘문의숙 3학년 때인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강진에서 거사하려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그는 정지용등고 시문학동인을 결성하여 1930년 3월에 창간된 ‘시문학’에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 등의 시를 출간하면서 등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