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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객의 신년 만필 - 주석과 함께 읽는 한국문학

주석과 함께 읽는 한국문학

이 글은 신채호 선생이 수필의 형식을 빌어서 신문예운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쓴 글로, 자신을 낭객, 즉 허랑하고 실속이 없는 사람이라고 지칭하여 신년의 연하장을 쓰려하나 이름난 선비의 문장을 배운다는 것이 주제넘은 것이라고 할 만큼 자신을 낮췄지만 혼란한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는 문학에 대해 따끔한 충고를 쓴 글이다. 이 글은 내용이 길지는 않으나, 한문이 많이 섞여 있어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하여, 다른 문학작품보다 페이지를 좀 짧게 나눠서 지루함을 달래고자 하였다. 또한, 엮은이가 달아놓은 주석과 함께 우리 선조들의 문체를 바라보는 즐거움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시간이 될 것 이라 생각한다.
이 글은 신채호 선생이 수필의 형식을 빌어서 신문예운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쓴 글로,
자신을 낭객, 즉 허랑하고 실속이 없는 사람이라고 지칭하여 신년의 연하장을 쓰려하나 이름난 선비의 문장을 배운다는 것이 주제넘은 것이라고 할 만큼 자신을 낮췄지만 혼란한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는 문학에 대해 따끔한 충고를 쓴 글이다.

이 글은 내용이 길지는 않으나, 한문이 많이 섞여 있어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하여, 다른 문학작품보다 페이지를 좀 짧게 나눠서 지루함을 달래고자 하였다.
또한, 엮은이가 달아놓은 주석과 함께 우리 선조들의 문체를 바라보는 즐거움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시간이 될 것 이라 생각한다.
신채호 [申采浩]
(1880. 11. 7. ~ 1936. 2. 21.)
호는 일편단생(一片丹生)·단생(丹生) 혹은 단재(丹齋)다.
그는 22세부터 강사로 계몽운동을 하였으며, 26세 황성신문의 기자로 논설을 쓰기 시작했으나, 무기 정간되자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에 일본의 삼대충노(三大忠奴), 금일 대한국민의 목적지, 한국자치제의 약사, 국가를 멸망케 하는 학부, 한일합병론자에게 고함, 이십세기 신국민, 독사신론(讀史新論), 수군 제일 위인 이순신전, 동국거걸최도통전(東國巨傑崔都統傳)등의 논설을 실어 정부에 대한 격려, 경계 및 국민에 대한 계몽운동을 계속 진행하였다.
그 밖에 역술서 이태리건국삼걸전(伊太利建國三傑傳)과 을지문덕전(乙支文德傳)을 국한문판으로 발행하기도 하였다.
그는 28세 무렵, 항일비밀결사인 신민회(新民會) 조직에 참여하였고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도 참여하여 논설을 통해 적극 지원하기도 하였고, 이후 광복회(光復會)를 조직하고 부회장으로 활약하였다.
1919년 북경에서 대한독립청년단을 조직, 단장이 되었다. 그 해 4월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참여, 임시의정원 의원이 되었다가 사임하였던 그는 행동 투쟁에 나섰다가, 1928년 대만에서 외국위체위조사건(外國爲替僞造事件)의 연루자로 체포되어 여순감옥(旅順監獄)으로 이감, 복역하던 중 뇌일혈로 순국하였다.
대표작으로는 이순신전, 일지문덕전, 조선상고사, 낭객의 신년 만필, 조선혁명선언, 독사신론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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